귀염둥이 아들은 15개월이 되었다.
보물 1호가 일기장, 취미가 '일기 쓰기'였던 내가 임신 이후 이 모든 것을 잊고 살게 되었다.
끄적끄적 뭔가 기록으로 남기면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는데 그럴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반면 이젠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 되어버린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나를 잃고 산 시간들이 공존했다.
'나'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늦은 나이에 아기를 갖고 낳아서 더 예쁘고 귀하다고 주문을 걸어가며 아기를 돌봤다.
앞으로 삶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하고 나의 전부라 말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아기지만 그동안 정지된 시간 속에 점차 고립되어 가는 이 기분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음을 부정하진 못하겠다.
그저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에 감사해야 하고, 주양육자로써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있을 뿐 큰 해결책은 없었다.
사실 누군가를 붙잡고 투정 부리는 것 또한 사치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왜 캐나다를 갔어? 한국에서 도움받으며 편하게 키우지-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하지만 한국이었으면 나 또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을 테고, 아기는 일찍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더 행복했을까 생각하면 사실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도달하면 그래,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나중에 이 순간들이 그리워질 거야, 괜찮아 괜찮아라고 또다시 내가 나를 토닥인다.
출산 후 각오했던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솔직히 출산 후 1년은 -나를 버리자- 각오했었다.
1년이 지나고 나니 많은 생각에 휩싸인다.
아기가 '돌'이 지나면 육아가 꽤 편해질 거라는 기대감은 지나고 보니... 아직은 멀은 듯하다...-1년만 더 지나면 괜찮을까..?-
분명히 각오를 한 시간들이었지만 점점 내가 도태되어가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하루가 지나가고 한 주가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없었다.
매일 습관처럼 핸드폰 스케쥴표에 미리 할 일들을 빼곡히 기록하고 체크해 나가는데 대부분이 아기와 남편에 관한 일정으로 채워져 있다. 아기 목욕, 아기 손톱정리, 아기 빨래, 아기 산책, 남편 출퇴근 시간, 마트 장 볼 리스트 같은...
주 5일 운동을 하던 남편 역시 아기가 생기고 난 후 -공동육아로- 본인이 원하는 운동을 갈 수 없음에 매우 힘들어했다. 그래서 본인이 운동을 하러 나가기 위해 나에게 외출을 종용했다. -_-
당시 나는 너무 어린 아기를 두고 외출을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고, 다른 사정들도 있었다.
그나마 날 위한 시간으로 마블 시리즈 영화를 보러 갔던 세 번의 힐링 타임이 있었다.
임신-출산 후 처음으로 간 영화관에서의 그 복잡 미묘했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2시간 30분의 긴 러닝 타임 동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만이었던지...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바로 아기 생각에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던 기억마저 이젠 좋은 추억이 되었다.
요즘 나는...
아기가 14개월이 되었을 때야 나에게 진정한 자유의 시간들이 주어졌다.
일정은 항상 동일하다.
주 3회 정도, 저녁 2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드라이브 겸 짧은 운전을 해서 내게 가장 익숙한 카페 팀홀튼으로 향하는 것.
소소한 재미를 붙이려고 시작한 자문자답 다이어리에 간단한 기록을 시작한다.
-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 나를 위한 하루가 주어진다면?
- 최근 인상깊었던 영화 및 드라마는?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 그때의 내 기분을 적어 내려간다.
(적어 내려 가는 답변들이 그다지 유쾌하지가 않은 건 왜일까?)
먼저 아이스캡 음료를 주문한다.
모든 셋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요즘 유일한 취미 활동인 티스토리를 채워 나간다.
중간중간 음악 감상도 하고, 드문드문 창 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도 한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게 생각보다 내게 큰 활력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너무 흔하고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상 같은 것이 이젠 기회를 엿봐야 하고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게 참 애잔하단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아직 인내해야 하는-육아를 위한-시간이 더 남아있다.
또다시 무기력함과 좌절감을 쳇바퀴처럼 돌 수도 있을 테고 그 속에서 오는 행복감과 감사함으로 온 마음을 가득 채우기도 할 테다.
사실 이 글을 일주일이 넘도록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내 마음이 너무 솔직하면 아기한테 괜스레 미안해지는 이 심리적 상태가 언제쯤 안정적으로 바뀌게 될까.
이제 조금은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더 아끼고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을 조금씩 기록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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