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출산의 실재는
어마무시 X100 했다.
한국에서는 흔히 남자의 군대 이야기에 빗대어
여자는 출산에 할 말이 많다고들 하던데
막상 경험하고 보니
정말 하고픈 말이 너~무 많다ㅠ.ㅠ
[ 1부 ]
캐나다에서
자연분만 vs 제왕절개
한국에서는 아름답게도 출산 방법에
'선택' 제왕절개라는 게 있고
지인들 대부분이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여
나 역시 만약 출산을 하게 된다면
무조건 제왕절개!!!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자연주의 출산을 지향하는 캐나다에서는
특별한 이벤트(역아, 전치태반 등)가 없는 한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제왕절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임신 20주쯤 2차 기형아 검사를 받고
아기는 건강한데 전치태반이 의심된다며
30주에 초음파를 하여 전치태반이 확정되면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소견을 주치의에게 듣게 된다.
제왕절개를 원하던바였으니
"대박!!!"
분명히 이랬어야 했는데
미묘 복잡한 마음이 확 올라오면서
난 그날 하루 종일 펑펑 울었다.
전치태반으로 인해 불가피한 제왕절개는
절대 내가 바랬던 상황이 아니었으니깐.
진료실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렸는데
친절하신 주치의는 휴지를 챙겨주고 다독여주며
태반이 올라가서
제왕 절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쭈그려 앉지 말기!
무거운 물건 들기 말기!!
피가 나면 무조건 응급실로!!!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전치태반을 알아보니
과다출혈, 태반박리 등 공포감을 일으키는 내용들로
꽤 우울했던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간 몸조심하겠다며
침대에서 눕눕을 실행했고
마음씨 고운 남편은 설거지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오히려 복병은
임신 중기에 발생한 대상포진이었다는 거##
임신 중기, 대상포진(Shingles)의 생생한 일기 1 (feat. 감동적인 캐나다 주치의)
그리고 원했던 제왕절개 아니었냐며
스스로를 토닥이고 마음을 굳혀갈 때쯤,
다음 초음파 검사에서 전치태반이 아니라며
축하한다는 주치의의 말씀에
기분이 다시 묘했다.
아... 기뻐해야 하는 거 맞겠지 ㅎㅎㅎ
[ 2부 ]
캐나다에서 출산 40주
예정일이 지났다면?
첫 아이는 늦게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건
글로도 보고 말로도 들어왔지만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언제 나올 거니??"
하루 종일 럭키(태명)에게 물어보며
태명이랑 비슷하니까 이 날 어때?
예) 8월 7일, 8월 17일...
숫자 연결이 예쁘니까 이 날 어때?
예) 8월 8일, 8월 9일...
하릴없이 달력만 주야장천 보며
나 홀로 출산 날짜를 정해주곤 했다ㅋㅋ
##출산일은 완전 생각지 못한 날짜##
그렇게 예정일이 다가왔고
40주가 되어서야 드디어!!!
주치의는 유도분만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유도분만 약물 투여에 관한 동의서 사인)
그런데 무려 10일 뒤로 일정이 잡히는데
그럼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
라는 물음에
캐나다는 42주까지 자연분만을 기다린다며..
아...
역시
그냥 제왕절개를 했어야 했어.
[ 3부 ]
유도분만을 3일 앞두고
촉이 오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검색 키워드 1순위는
아마 '출산 징후' 일 것이다.
언제 병원을 가야 할지 아리쏭하기 때문.
이슬이 비치면 가야 한다는데
이슬이란 게 뭐지??
양수가 터진다는데
그 양수란 건 또 무엇??
진진통이 5분 간격이면 가야 한다는데
이게 진진통인가, 가진통인가?
많은 궁금증을 안고 검색하며 밤을 새웠는데
(사실 막달에 임산부는 거의 잠을 잘 수가 없...ㅠㅠ)
막상 그날이 오니까
아!!! 느낌이 온다.
유도분만 예정일을 3일 앞두고
이른 아침 화장실을 다녀온 후,
생리대가 필요할 정도의 피를 보고
양수 파수와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몇 시간 간격으로 지속되자
병원에 가야 한다는 촉!!!
미리 싸 두었던 '출산 가방=캐리어'와
미역국과 밥, 간식이 든 에코백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2시 10분에 병원에 도착하였고
코비드 상황에 병원 건물에 입장하자마자
본인 확인, 마스크 교환,
코비드 증상을 구두로 체크 후
옷에 부착할 스티커를 받고 입장하게 된다.
먼저, 트리아지룸에 도착!
본인 확인, 출산 예정일(Due date)과
출산을 앞두고 (코로나로) 전화 인터뷰로 작성된
개인 파일을 확인한 후 방으로 안내받았다.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통에 받도록 하고
생리대를 화장실에 버려두면
간호사가 확인한 후 담당 의사에게 연락하였다.
속옷을 벗고 침대에 패드를 깐 상태에 이불을 덮고 누워
블리딩(Blooding) 여부와 아기 심장박동수를
체크하기 시작.
1시간 후 주치의가 도착하여 상태를 확인하는데
당장 양수 파수를 확신할 수 없지만
블리딩(blooding)이 되고 있기 때문에
초음파 후 집으로 갈지
병원에 머무를지를 결정하자고 말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주치의는 생각을 바꿔
병원에 남아 유도분만을 시도해 보는 걸로 정하게 된다.
이 날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점심으로 겨우 수박 4조각만 먹고 병원에 왔다는 것!
혹시 병원에서 집으로 돌려보내 질까 봐
혹은 제왕절개가 필요할 수도 있을까 봐
나름 공복 기간을 가지겠다며
점심을 거른 채 병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모두 틀렸가.
그날 바로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고
제왕절개를 울부짖는
난산 of 난산이 펼쳐진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님들##
무조건!!!
많이 먹어둬야 합니다.
에너지 비축을 위해
진짜 중요해요!!!
집에서 병원까지 차로 15분 이내.
이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
퇴원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조리원이 없는 캐나다에서는
병원과 집의 거리가 짧은 것이 매우 옳다!
[ 4부 ]
1:1 전담 간호사 시스템,
에피듀럴(무통 천국)은
빠르면 빠를수록!
분만실로 이동하면서도 실감이 안 나 얼떨떨하면서
이 때는 두려움보단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뒤의 무시무시함을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설렘이란...
분만실 창이 커 뷰에 감탄하며
여유 있게 진통 어플을 켰고
이 날의 있었던 일정을
메모장에 열심히 기록하고 있었다.
오후 5시,
간단히 코비드 테스트를 마치고
(보호자 1명 동석 가능, 남편은 코비드 테스트 X)
배 위로 아기 심장박동기를 측정하기 위한
장치가 둘러싸고(출산할 때까지)
옥시토신 유도분만 촉진제가 투입되면서
출산까지 장장 11시간의 여정이 시작된다.
다시 떠올려도 아찔하다...
캐나다의 분만실의 시스템 중 가장 칭찬하고픈 건
분만실에 입실하자마자 진통부터 분만할 때까지
전담 간호사가 1:1 케어를 해 준다는 건데
옆에 꼭 붙어 하나부터 열까지 알뜰살뜰 챙겨준다.
5시에 만난 간호사 ‘시드니’는
정말 좋은 분이었다.
그녀는 배고파하는 나에게 젤리와 수프를 가져다주고
체온, 맥박, 패드를 갈아 블리딩 상태를 확인하면서
에피듀렐(무통천국)을 원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그녀가 내가 출산할 때
옆에 있어줄 간호사구나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2시간 후, 7시가 되자 간호사 체인지@@
24시간 교대 시간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극찬하고픈 이 시스템은
전담 간호사가 누구냐에 따라
출산 당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단점도 함께 따라온다.
바뀐 간호사는 너무 별로라서
출산 후 이름을 물어봤는데
그녀는 내게 웃으며 둘째로 딸을 낳으면
자신의 이름으로 지으라고
하하...-_-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불행 중 다행으로 중간중간
그녀의 휴식시간을 위해
다른 간호사가 교대로 30분씩 케어해주었는데
중간에 투입된 3명의 간호사들은 너무 좋으셨다.
그리고 일명 무통 천국이라고 불리는 에피듀럴
적어도 캐나다에서는 아프다 싶은 시점이 오면
곧!!! 바로 요청해야 한다.
난 진통을 좀 더 참아보겠다고 버텼는데
(도대체 왜!!!)
화장실을 혼자 가지 못할 정도의 상태가 되었을 때
에피듀럴을 요청했다.
요청할 당시 내 앞에 대기하고 있는
3명의 산모가 더 있다기에
몇 분만 참으면 될 줄 알았는데
무려 1시간 20분 후에나 도착하신
마취과 의사 존(Jhon).
그는 신중에 신중을 가하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침착성을 보이는 분으로
남편은 내 등에 꽂히는 에피듀럴 주삿바늘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데(어떻게 될까 봐)
난 진진통을 온몸으로 참고 있는 중이라
등에 꽂히는 바늘의 통증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무통 천국이란 걸 경험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것도 잠시,
분만 시 다시 그 존이 투입되는 미친 일이 벌어졌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슬프고 길어서 생략하겠다.
[ 5부 ]
출산의 고통을 한마디로?
'거열형'
'거열형'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출산하는 내내
제 머릿속에 맴돌았던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브'
다른 하나는 '거열형'이었다.
뱀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서
아담과 나눠먹은 이브는
하느님의 노여움으로
여자는 대대손손
아기를 낳는 고통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보통 여자로 태어나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으로 학습되어 왔지만
실상은 매우 굴욕적이고 처참하며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뜬금없이 그녀가 떠오르며 원망감이 훅하고 올라왔다.
(난 가톨릭 신자..하..)
출산의 고통에 대해
트럭이 배 위로 지나가는 것 같다,
칼로 계속 배를 쑤시는 것 같다,
등 자연분만 경험담을 글로 감을 잡았는데
나는 양 손과 양 발이 네 마리의 소에 묶여
사지가 찢겨 가는
조선시대 형벌 '거열형'이 떠올랐다.
총진통은 11시간으로
그중 실제 의사와 분만 작업은
4시간 동안 이루어졌으니
(한국에서 이 정도면 제왕절개 하나요?!)
내 팔과 다리가 압박되는 시간이 4시간,
그 자세로 4시간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문이 따로 없었다.
고요한 새벽녘,
울부짖는 내 목소리만 피드백이 되어 돌아왔고
공복이 12시간이 넘었기에
이미 힘이 빠져 탈진했고
온몸은 땀으로 젖은 채
분만 중 오바이트를 2번 하고
남편은 내가 기절할 것 같다 했지만
졸도 직전까지만 가는 반복된 상황
나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제왕절개를 요청
그러나 주치의는 내게 할 수 있다며...
옆에서 푸쉬 카운트를 세고 있던 간호사도
이미 지쳐있는지 오래, 카운터를 말줄임표처럼..
(그게 나를 더 힘 빠지게 했다는..)
그 간호사는 본인도 힘든지 바큠을 의사에게 권했지만
담당 의사는 정말 끝까지 내게 힘을 북돋아 주며
아기 이름을 부르면서 곧 나온다고
자연분만을 해낼 수 있도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도 그 과정을 보고
주치의 의사에게 리스펙 했다!!!
그렇게 이대로 죽겠구나 싶을 때
아기가 뿅!!??
사실 난 그 순간에 기억이 전혀 없다.
원래는 남편이 탯줄을 자르기로 되어있었지만
아기가 나올 때 탯줄에 목이 한 번 감겨 있어
급박한 상황에 주치의가 탯줄을 잘랐고
아기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잠시 기절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몸에 뜨거운 무언가가 올려지면서
정신이 들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는데
스킨 투 스킨이고 뭐고 그냥 펑펑 울고만 있었다.
너를 만난 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41주 0일에 태어난 아기는
54.5cm, 3.88kg의
아주 건강한 남자아이
노산에 난산에 자연분만은
내 인생에서 가장 첫 번째로 꼽히는 고통이었지만
최고의 감동임에는 분명하다.
너를 만난 후
내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미안하고
감사하고
애틋하고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그렇게 난 엄마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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