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오래전에 한 번 해 봐야지 했었다.
"출산하면 깜빡깜빡한다던데."
"출산 후 건망증이 장난 아니라며."
"애를 낳으면서 뇌까지 낳았나 봐-_-."
왜냐하면 이런 말들이 내게 현실로 와 버리니 스스로 속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산증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곧 30개월이 되는 남자아이를 키우면서 이 건망증으로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대략 크게 세 개의 하소연이 있는데 부끄러운 고백이자 지난 날 나는 이랬으나 앞으로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이 함께 있다.
건망증의 시작?!
럭키가 10개월 때쯤 한국을 방문했었다.
아기 통장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는데 맙소사!!! 핸드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늘 내 한 몸과 같이 동행하며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핸드폰을 중요한 은행 업무를 앞두고 집에 두고 나왔다는 게 처음엔 그저 신선한 충격이었다.
엥? 내가 맨 정신에?? 핸드폰을???
미쳤구나!!! 했다.
그러나 이젠 이따금씩 핸드폰을 차에 둔 채 집으로 들어와서 핸드폰을 찾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그런데 웃기게도 혼자 운전할 땐 절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데 꼭 럭키와 동행해서 카시트에 태우고 내리고 챙기다 보면 꼭 핸드폰을 또르르... 잊어 먹고 만다ㅠㅠ
이젠 어느 주부가 냉장고에 핸드폰을 두고 문을 닫았다는 스토리가 완벽히 이해가 된다랄까...
출산 후 그런 거 맞는 듯! 우린 모두 왜 이렇게 됐을까 -_-
민망했던 건망증
럭키가 18개월이 되고, 서서히 나도 바깥 활동을 해야겠다 생각할 즈음이었다.
그 당시 저녁에 영어 공부를 하는 모임이 있었다. 남편이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급하게 아이를 바통 터치하고 나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어느 날, 자리에 앉아 외투를 벗었는데 티셔츠 목 주변이 계속 불편했다.
아뿔싸, 옷의 앞 뒤를 바뀌어 있었다. 상표가 목 앞으로 오면서 그 꺼끌거림이 신경쓰였던 거다.
화장실로 달려가 옷을 바로 고쳐 입으면서 나오는데 그때의 그 허탈한 웃음이란...
어느 누구도 지적하는 사람 없고, 눈치 챈 사람도 없었겠지만 나는 그 상황이 매우 슬펐다.
내가 이렇게까지 정신을 두고 사는구나 하면서 동시에 이젠 여자가 아닌 그저 엄마일 뿐인가 싶은 서글픈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 후 어느 날은 속옷까지 뒤집어 입던 걸 발견하면서 스스로 내려놓게 되었다는 -_-ㅋㅋ
그래, 겉옷보다 나만 아는 속옷이 차라리 낫다ㅋㅋ
이렇게 자기 합리화와 위안을 위한 이상한 긍정적 회로가 생겨났다.
위험했던 건망증
럭키는 27개월, 불과 2개월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마주 오는 차량이 나에게 뭔가 사인을 보냈다.
뭐지?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을 막 빠져나오자 멕시코 친구를 만났다. 친구도 운전 중이었기에 우린 서로 짧게 인사를 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도로 한 복판에 신호 대기에 서 있는데 그제서야 계기판에 내 차 문이 열려 있다는 사인을 발견했다.
맙소사!!!!!!!!!!!!
순간 럭키 카시트 쪽 문이 열렸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그쪽으로 아이를 태우진 않아서 그 문은 절대 아닌데 라는 찰나의 안심과 함께 백미러를 보는데 뒷 차의 운전석 할머니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동시에 멕시코 친구로부터 전화가 울려댔다.
그 순간들이 완전 멘붕멘붕.
사건의 발단은, 내가 트렁크 문을 연 상태로 운전을 하고 있었던 거다.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자마자 바로 차를 옆 길가에 세웠고 트렁크 문을 닫았다.
그 전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나는 며칠 전 구매했던 외투를 환불하기 위해 종이 가방을 트렁크에 넣었는데 문을 닫지 않은 상태로 운전석에 앉았던 것이다.
열린 트렁크에는 옷이 담겨 있던 종이가방이 한 눈에도 딱 보이게 가운데에 떡하지 놓여 있었는데 그게 또 흔들흔들 위태롭게 종이가방이 흔들렸던 것 같다. 뒷 차에 운전하고 계시던 할머니의 벙진 표정이 그제서야 짐작이 갔다.
지금 글 쓰면서 상기해 보니 만약 그 종이가방이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면 환불하지 못한 내 옷 값 40만 원이 날아갈 뻔했다. 아, 이래저래 너무 아찔하다;;
꼭 필요한 한 가지만 잊지 않으면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친구와 플레이데이트를 하면 우리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공원이든 어디든 한참을 놀고 자리를 떠날 때, 핸드폰 챙겼어? 가방 챙겼어? 하면서 혹시 서로의 소지품을 놓고 갈까 봐 체크한다.
그러다 우린 "늘 꼭 하나만 잊지 않으면 돼." 하며 동시에 까르르 웃어댔다.
나의 아들 럭키와 멕시코 아들 M :)
다른 거 다 잃어버려도 우리 아이들은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지!
지금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너만 생각하느라,
그동안 나만을 위했던 나를 잠시 잊고 사는 거.
매일을 빼곡하게 스케줄을 적어놓고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건망증과 같은 작은 실수가 내겐 늘 엄청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한동안 기억에 오래 남는다.
도대체 그 순간 내 정신은 어디에 있었길래 뭘 이리도 깜빡깜빡하는지 자책을 하다가도 가만히 보면 내 생활은 어느새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내 손톱을 자를 때가 됐네 하며 바라봐 놓고선 럭키 손톱을 자르면서 이내 내 손톱 상태는 잊어버리고, 부엌에 뭘 하러 들어갔다가 쫄래쫄래 나를 따라온 럭키의 요구를 응하다 보면 내가 왜 부엌에 들어왔는지조차 잊어버릴 때도 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위에서 들으면 뭐 설마 그러겠어? 하는 것들이 이젠 아주 정직하게 차근차근 하나씩 체험하고 있으니 엄마로서는 아주 충실히 잘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아이는 빠르게 성장할 테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아기에게 최선을 다해서 후회를 남기지 말자!
... 더불어 기억력도 살아나길ㅠ.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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